이호연의 DSP미디어
대표 부재, 계약해지 소송 등 악재 이어져
‘마마무’ RBW에 90억 원 매각
젝스키스, 핑클, SS501, 카라. 우리나라 아이돌 계보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그룹들이다. 이들은 모두 1990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SM엔터테인먼트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아이돌 산업의 양대산맥을 이뤘던 대성기획, 오늘날 DSP미디어 소속 가수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젝스키스, 새끼손가락을 치켜들며 ‘약속해줘’ 말하는 핑클이나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외치는 카라는 지금도 대중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을 배출한 DSP미디어, 지금은 어떤 가수를 키우고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현재 DSP미디어는 없다. 지난 1월, 걸그룹 ‘마마무’의 소속사로 유명한 연예기획사 RBW에 인수합병(M&A) 됐다. RBW는 최미경 DSP미디어 대표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39.13%를 90억 3,208만 원에 인수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돌 정통 명가가 신생 기획사에 인수되다니”, “DSP가 이대로 끝난다니 믿을 수가 없다”, “기분이 이상하다. 폐업도 아니고 인수라지만 아이돌 산업 기념비가 사라지는 것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속을 들여다보니 DSP미디어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DSP미디어는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매니저 출신인 이호연 대표가 1991년에 세운 회사이다. 이호연 대표는 아이돌뿐만 아니라 ‘마이걸’, ‘연개소문’, ‘외과의사 봉달희’ 등 드라마 제작에도 뛰어들어 방송가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0년, 뇌출혈로 쓰러져 8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이 대표가 쓰러지자 부인인 최미경이 대표 자리를 맡았다. 이후 기존 임원과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갔고, 이듬해 당시 소속사 메인그룹이었던 카라가 회사를 상대로 전속계약해지를 통보했다. 3개월 만에 활동을 원래대로 이어가기로 정리가 됐지만, 이 사건 이후로 DSP미디어는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카라를 비롯해 당시 소속가수의 무리한 해외 진출 시도와 새 먹거리 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드라마 투자 실패에 따른 상장 폐지 문제가 맞물렸었다. 2018년엔 이호연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꾸준히 재기를 노렸지만 경영 전략 부재 등 회사 안팎으로 우환이 장기화됐다.
결정적으로 2020년, 걸그룹 에이프릴이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며 DSP미디어의 유일한 캐쉬카우 역할을 하고 있던 시기에 별안간 그룹 내부 불화설이 폭로됐다. 탈퇴한 멤버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법정공방까지 가게 했고, DSP미디어는 경영난에 대외적 이미지까지 망가져 결국 회사를 팔았다.
한편 DSP미디어를 품은 RBW는 향후 음원 지적재산(IP) 신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DSP미디어는 K팝 음원과 아티스트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유통 가능한 음원만 1,000곡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원한 사랑’, ‘미스터’ 등 가요계에서 히트를 쳤던 명곡들을 누적콘텐츠로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신사업을 접목해 볼 수 있다고 업계 전문가는 분석했다.